영남 기호학파의 마지막 유학자로 불려온 화재(華齋) 이우섭(李雨燮)선생이 7월 20일 0시10분께
경남 김해시 장유면 관동리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76세. 고인은 영남의 이름난 유학자이던
월헌(月軒) 이보림(李普林·1902~72) 선생의 아들로 평생 고향에 있는 월봉서원(月峰書院)과
월봉서당(月峰書堂)을 지키면서 한학을 가르쳤다. 조선 중종의 15대손인 고인은 평생 도포에
갓을 쓰고 전통방식에 따라 유학자의 삶을 살았다.
이시대의 마지막 유림장이 될 이번 유림장은 선비가 숨졌을 때 초상난 달을 넘겨 다음달에 치르는
유월장으로 3일장인 일반장과 달리 16일동안 이어졌으며, 8월 4일 오전 8시 월봉서원 일주문 입구에서
발인제를 지낸 뒤 약 2Km 정도 떨어진 선영 아래 화산정사에서 노제를 지낸 뒤 하관했다.
이날 수많은 사람들이 덕망높았던 화재선생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였다.
이번 유월장에는 상복, 상여, 깃발 등을 모두 전통적 예서(禮書)에 맞게 제작하였고
탈 명인 이도열 고성 탈박물관 명예관장이 10일간 오동나무를 깎아 만든 방상씨탈 2점이 제작되어
만장 행렬 앞에서 춤을 추고 길을 열어나가면서 악귀를 쫓는 역할을 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방상씨탈은 장례에 사용한 뒤 무덤 곁에서 태운 후 묻어버리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을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이번 방상씨탈은 태우지 않고 박물관 등에 보관해 문화자료로 보존될 예정이다.
상주들은 삼년상을 치르기로 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