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산행을 하다 보면 하루 종일 사람 한 명 만나지 못할 때가 많다. 깊은 산엔 온갖 인공의 소음도 차단된다. 그래서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나 바람소리, 새소리가 크게 들린다. 날씨가 어둑해질 무렵,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 적도 있다. 해는 넘어가고 갈 길은 바쁜 마음이 들켜서이다.
우리나라 산에는 대형 야생동물이 흔하지 않아 사람을 공격할 만한 짐승은 그리 많지 않다. 지리산의 반달가슴곰이나 요즘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는 멧돼지 정도가 사람들에게 위협이 된다. 한참 약이 오른 살모사도 그렇다.
하지만, 야생동물들은 감각기관이 사람보다 더 발달돼 인기척을 알아차리고 먼저 피한다. 그래서 산행 도중 이들을 맞닥뜨릴 경우가 좀체 없다. 혹여 야생동물을 만났을 때 대처 요령이 있다. 반달가슴곰을 만났을 때는 등을 보이지 말고, 소리를 질러 곰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 멧돼지를 만나면 큰 바위 위로 피하는 것이 제일 좋다. 우산을 펴서 덩치가 큰 존재임을 과시하라는데, 그렇다고 우산을 늘 휴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리 현실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호랑이나 늑대 등 상위 포식자가 없으니 멧돼지 개체수가 늘었다. 또 인간의 개발행위로 야생 공간이 많이 줄고, 먹을 것이 부족해 도시로 나온다. 간혹 비참한 최후를 맞는 멧돼지를 보면 안쓰럽다.
하지만 산에서 가장 무서운 것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산꾼들은 '사람'이라고 한다.
일전에 낙남정맥을 하며 고갯마루로 내려가는데 마주 올라오는 여성 한 분을 만났다. 안부에 도착해 커피 한 잔을 먹고 다시 능선을 오르는데 이번에는 그 아주머니가 반대편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환상방황(링반데룽)'에 빠졌나 한참 짚어봤다. 결코 아니었다. 축지법(?)을 쓰는 아주머니가 갑자기 무서웠다. 따뜻한 인사 한마디 나누고, '사람'임을 확인하면 괜찮아진다.
- 출처 : 부산일보
- 글쓴이 : 이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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